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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신(劉得信, 1896~1958)의 생애와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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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6-04-23 조회 : 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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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신(劉得信, 1896~1958)의 생애와 독립운동

 

1. 성장과 교육, 사상 형성 (1896~1919)

유득신은 189627일 서울 서대문 대연동에서 태어났다. 부친 유성윤은 중국식 호떡집을 운영하였으나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는 1909년 양주군 노해면 월계리의 창흥학교에 입학하여 1912년 졸업한 뒤, 같은 해 12월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1917년 졸업하였다. 이후 평안북도 영변에서 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며 기독교 신앙과 민족의식을 함께 키웠다.

19193·1운동을 계기로 항일 의식을 더욱 확고히 하였고,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 길림성 유하현 고산자의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이곳에서 훗날 함께 활동하게 되는 엄준을 만나게 되었다.

 

2. 일본 활동과 귀국, 항일 의식의 확대 (1920)

1920년 도쿄로 건너가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같은 해 4월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웅변회 등에 참가하여 적극적으로 배일 사상을 선전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의해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었다.

이후 귀국하여 생업에 종사하다가 경남 고성의 송광학교 교원으로 활동했으나, 일제 경찰의 감시로 인해 학교를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3. 김상옥과의 결합, 무장투쟁 참여 (1920)

192010월경 그는 김상옥 의사의 연락을 받고 왕십리의 김태현 목사 집에서 만나 암살단에 가입하였다.

김상옥은 총독부 요인 처단과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있었으며, 유득신은 권총과 탄환, 폭탄을 전달받아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그는 엄준과 함께 김상옥의 상하이 망명을 돕기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4. 군자금 모집 활동 (1920~1921)

유득신은 서울과 경기 일대를 중심으로 약 7회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19201010: 고양군 임원상 집에서 20원 모집

19201030: 이만응 집에서 20650전 모집

192012: 송신묵, 이만응 등으로부터 자금 모집

19211: 김영두 집에서 200원 모집

정구창, 이범열 등에게 군자금 요구 및 협박문 발송

이 자금들은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김상옥의 활동 지원에 사용되었다.

 

5. 체포와 옥고 (1921)

19211월 김영두에게서 받은 수표가 단서가 되어 동지 엄준이 먼저 체포되었고, 유득신도 세브란스병원 내 은신처에서 붙잡혔다.

체포 당시 그는 권총, 탄환, 폭탄 등을 소지하고 있었다.

같은 해 11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위반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장기간 옥고를 치렀다.

 

6. 사후 평가와 서훈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7. 역사적 의의

유득신은 김상옥 의사의 항일 무장투쟁을 실질적으로 지원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특히 군자금 모집과 조직 활동을 통해 국내 항일운동의 기반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의 활동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일제 통치에 대한 조직적 저항과 임시정부 지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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