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박문용(朴文鎔)선생, 겨레의 얼이 되다 > 빛으로 남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료실

빛으로 남다

독립운동가 박문용(朴文鎔)선생, 겨레의 얼이 되다

페이지 정보

등록일 : 25-08-12 조회 : 1,416

본문

2e9042a3b7966932f06f59c134ec6ed4_1775542913_5217.png 

사진은 2026년 2월 박문용 지사 후손으로 제공 받은 받았습니다.2e9042a3b7966932f06f59c134ec6ed4_1775542999_6241.jpg


독립운동가 박문용(朴文鎔)선생, 겨레의 얼이 되다

박문용 선생(1882.1.15.~1929.7.20)은 일제강점기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조직하고 대한독립군사령부결성 등 무장투쟁을 이끈 투사입니다.
암살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면서도 조국을 향한 뜻을 꺾지 않았으며, 상하이 임시정부와 비밀결사 활동을 통해 국내외 만세운동의 불씨를 되살렸습니다.


1. 위대한 결단, 독립의 길에 서다

박문용 선생은 1882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박광전 장군11대 후손으로, 한학과 신학문을 두루 익히며 성장했습니다.
겸백면장을 지내며 안정된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1910년 경술국치이후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그 안락함을 내려놓았습니다.

1913, 면내 공금 보관금 3276전을 가지고 고향을 떠난 것은 조국 독립을 향한 선생의 위대한 첫걸음이었습니다.

 

2. 자유의 불꽃, 해외에서 타오르다

1919, 선생은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그곳에서 다소 주춤하던 만세운동의 재기를 고취하고, 국내외 행정 연락망을 조직하는 데 힘썼습니다.

특히 톈진의 비밀결사 불변단에 참여하여 부단장·의사부장·총무 등을 맡으며 2차 만세시위운동추진의 선봉에 섰습니다.
또한 대한민족대표명의의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며,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같은 해 9, 대한민국 임시정부 전라남북도 특파원으로 국내에 잠입한 선생은 제2차 만세운동 실현을 위해 불철주야 활동했습니다.
비록 계획은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었지만, 선생의 노력과 각 독립단체의 참여는 서울과 평양 등지에서 산발적인 만세운동을 이끌어내며 민족의 독립 정신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3. 조선독립군사령부, 무장투쟁의 서막

1920,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인사들과 만나 독립운동 노선을 무력투쟁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선생은 한훈 선생과 함께 조선독립군사령부를 결성하고 비서장으로서 독립군 모집과 군자금 모금에 앞장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제 총독부 고위 관리와 친일 부호, 밀정을 처단하며 민족의 기개를 드높이고자 했습니다.
이는 조국 독립을 향한 선생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4. 암살단 사건과 옥고, 그리고 빛나는 유산

미국 의원단 방한 시 친일파 거두를 처단하려던 **‘암살단 사건’**은 아쉽게도 사전에 발각되었습니다.
선생은 한훈 선생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7의 모진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럼에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선생의 숭고한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1980, 대한민국 정부는 박문용 선생께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영원히 기억될 이름

박문용 선생의 불굴의 정신헌신적인 삶은 오늘날까지 우리 겨레에게 깊은 울림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진정한 애국심의 표상으로, 우리 민족의 기억 속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주요 참고: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연구소


판결 사건 하나 도적류(盜類) 계획 사건

 

작년 8, 미국 의원단이 국내를 순방하여 경성을 지날 때, 비행기를 타고 경성에 온 총독 이하 고관들과 그 친일파를 처단하고, 우리 한인이 적에게 반항함을 세상에 알리려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된 한광식 등 18인은 이번 달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다음과 같이 판결을 받았다.

 

김동순: 징역10

한우석: 징역 8

박문용: 징역 7

이돈구: 징역 6

조만식, 김태원, 명제세: 3

서병철, 신화수, 윤익중: 2

김화룡, 최영만, 서대순: 1

이운기: 10개월

최석기: 6개월

유연원: 무죄

 

미결 구류일수 120일은 형기에 산입한다

 

이 사건은 사실상 경성 총독부 폭탄 투척 미수 사건으로 불리는 독립운동 관련 재판 기사입니다.

기사 속 인물 대부분이 독립운동가로, 당시 미국 의원단 방문을 계기로 세계 여론에 일제의 식민통치를 폭로하려 했던 계획이었습니다.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168
어제
651
최대
1,620
전체
396,974
Copyright © 2021대한민국 최초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