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판통의 새벽, 일제의 급습과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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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6-01-15 조회 : 270본문
삼판통의 새벽, 일제의 급습과 탈출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 폭파 이후,
1월 17일 새벽의 삼판통 의거는 열흘간 이어진 투쟁을
본격적인 무장 항쟁으로 전환시킨 결정적 사건이었다.
삼판통(오늘날 서울 후암동).
김상옥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연초 의회 참석을 위해
도쿄로 향할 것을 예상하고,
남대문역과 가까운 누이동생의 집에 은신하며
다음 국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그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다.
1923년 1월 17일 새벽, 형사 21명이 은신처을 포위했고,
다무라 형사부장을 포함한 4명이 집 안으로 진입해 항복을 명했다.
김상옥은 즉각 대응했다.
방문을 열며 총탄을 발사한 뒤, 담장을 넘어 남산으로 탈출했다.
총격전 끝에 다무라는 사망하고,
이마세·우메다 경부는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경성의 치안 체계는 흔들렸고,
일제 통치는 강화하기 위해 도시는 즉각 봉쇄했다.
경성은 물론, 경기 전역에서 천여 명의 군경이 동원되었다.
한 사람을 향한 포위망은
김상옥이 일제에 안긴 두려움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김상옥은 맨발로 눈 덮인 남산을 넘어 왕십리로 향했다.
새벽의 찬 기운 속에서 그는 안정사에 몸을 숨기고
승복으로 갈아입은 뒤, 짚신을 거꾸로 신어 발자국을 숨겼다.
그렇게 검문과 추적의 눈을 피해 나갔다.
삼판통의 새벽은 끝이 아니었다.
이 탈출은 열흘간 이어질 항일 투쟁의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