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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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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의사(金相玉 1889-1923)는 소년 노동자로 출발하여 종업원 50여명을 거느린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그는 편안한 삶, 번영하는 사업을 두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애국계몽운동, 학생운동, 광복단 투쟁, 물산장려운동, 3.1운동, 임시정부, 군자금 조달, 의열투쟁 등 독립운동의 거의 모든 방략을 실천했다.
특히 1923년 1월 12일부터 22일까지 5일 간격으로 11일간 3차례에 걸쳐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삼판통 일제 형사대 포위망 탈출, 효제동 일대천의 포위 속에서
홀로 맞선 서울 시가전은 일제를 놀라게 했고, 우리 겨레에게 엄청난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1 가난한 무관 집안의 아들
1889년 1월 5일 서울 동대문 어의동(현 효제동 72번지)에서 태어났다.
한말 군관을 지낸 김귀현(金貴鉉)과 김점순(金点順) 사이의 3남 1녀 중 둘째 아들이다.
본관은 김해이며, 김수로 대왕 71세 손이다.
2 8살 소년 노동자
군대에서 해직된 아버지 김귀현은 말총으로 체 만드는 소규모 제조소를 시작하였다. 김상옥도 8살 때부터 이 일을 도왔다.
그럼에도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자 14살 때부터 형제들과 대장간에서 일하게 되었다.
3 배움에 대한 열망, 야학당 세우고 자신도 공부함
무인기질을 타고난 데다가 대장간에서 단련된 까닭에 해마다 서울에서 벌어지던 석전(石戰)의 용사로 이름이 높았다. 배움에 대한 열망도 커서 대장간에서 일하며 틈틈이 이지호(李之鎬)노인으로부터 한문을 배웠으며, 16세(1905년)에는 동대문 교회 부설 신군학교에 야학을 개설하고, 18세(1907년)에는 동흥학교에 동흥야학(東興夜學)을 설립하여 자신처럼 일하는 청소년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하고 자신도 공부했다.
미국 유학을 갈 희망을 품고 대장간 일을 마치면 야간에 YMCA 영어반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YMCA 청년부장이 되었다. 이때 체육교사 이필주는 후에 정동교회 담임목사로서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이다.
4 기독교인, 기독교 서점 경영, 권서활동
청년 김상옥은 동대문교회에 다녔으며, 한때 동대문에서 기독교 서점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적자를 면치 못해 접었다.
1912년 23살이 된 김상옥은 기독교 서적을 보급하여 선교에 도움을 주는 권서일을 하며 충청 전라 경상지방 각지를 돌았다. 이때 약품 행상을 겸하여 형제들과 철물점을 차릴 밑천을 모았다.
5 영덕철물점 창업
1912년 10월 삼남지방을 돌며 약을 팔아 모은 돈에 형 춘옥과 동생 춘원이 대장간 일을 하여 모은 돈을 합하여 동대문 앞 창신동 493번지 길갓집을 얻어 영덕철물점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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