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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당한 '총독 주살'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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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1-09-08 조회 : 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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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총독처단 계획

1.  김상옥의사의 좌절당한  ‘총독 주살’

사이토 총독이 1923년 1월에 동경의 국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기로 되어있었다.  강우규 의사는 기차에서 내려 남대문 역으로 나오는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졌었다. 김상옥의사와 동지들은 기차를 타려는 총독과 배웅 나온 총독부 고관들을 향해 폭탄을 던져 총독 이하 총독부 고관들을 한꺼번에 폭파 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은신처인 삼판통 매부 집이 일본경찰들의 감시와 미행에 발각 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2. 김상옥 의사의 당초 계획
당초 김상옥이 두 번째로 고국에 잠입해서 동지들과 의논, 결정한 구체적인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사이또」총독을 비롯하여 일제 고관을 암살하고 일경 및 그 주구 노릇 하는 반 민족 도배 숙청. 
둘째,  총독부 및 관공서 폭파.
셋째,  행동대와 과거의 동지들을 모아 조직적인 훈련으로 전국적인 항일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3.  고봉근  (독립운동가,  건국포장)
서울 사람으로,  1922년 11월 중순경 재등실 조선총독 주살과 일제 관공서 파괴를 목적으로 단신 서울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처남 김상옥을 1922년 12월 7일부터 자가에 유숙하게 하며, 지리 정탐, 목표물의 파악, 신변 보호 등을 위해 활동하였다.  1923년 1월 12일 김상옥이 종로경찰서를 폭파한 뒤 자신의 집에 피신하고 있는 것을 눈치챈  일경 21여 명이 집을 포위, 습격하려 하자 김상옥이 뛰쳐나가며 총격전을 벌이는 사이 나머지 일경 5, 6명과 격투를 벌이며 그의 탈출을 지원하였으나, 붙잡혀 즉석에서 40여 명의 일경에 둘러싸여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  곧이어  1923년 1월 22일에는 김상옥이 서울 효제동에서 순국한 뒤 계속되는 연루자 검거에서  전우진 등 12명과 함께 붙잡혀,  소위 범인은닉으로 조사를 받다가 증거불충분으로  3월 16일 출감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국가보훈처, 공훈록)


4. 사이토 마코토 총독은
  문화통치’ 시행으로 최장수 조선 총독 역임 ,  사이토 마코토는 일본 메이지쇼와 시대 군인이다. 그는 반란군의 후예라는 약점이 있었으나 사쓰마파의 해군 유력자 딸과 결혼하면서 해군 분야에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지멘스 사건으로 일시적으로 실각하기도 했지만, 1919년 조선에서 일어난 3 · 1 운동 직후 제3대 조선 총독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이전의 ‘무단 통치’를 ‘문화 통치’로 전환해 폭력과 회유 양면책을 구사하면서 조선 통치를 안정시키려고 했다.  5 · 15 쿠데타로 정당 내각이 무너지자 조선 통치의 실적을 인정받아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여 거국일치내각을 이끌었다. 퇴임 후에는 천황의 최측근인 내대신이 되어 쇼와 천황을 보필하다가 1936년 2 · 26 사건 때 살해당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김상옥의사 평전>
1월14일, 김상옥이 언제나 처럼 저녁 나들이를 나가 문안의 몇몇 동지들을 만나고 평소보다 일찍 밤 11시경 매부 고봉근을 앞세우고 삼판통 매부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남산 밑 느티나무 아래에서 고봉근이 잘 아는 김동명이란 형사를 만났다.
“아니 고 선생, 어디 갔다 오시우, 밤이 늦었는데?”
“어, 김형사 아니우?  아, 술 한 잔 하느라고 늦었소.”
“저 사람은 누구요?”
“아, 김포 친군데, 오늘 너무 늦어 우리 집에 같이 가오.”
“지금  비상경계 중이니 빨리 가시오.”
“알겠소. 수고하시오.”
“아, 이 사람아, 빨리 좀 오게!”
김상옥은 고봉근의 재촉 소리에 숨을 헉헉거리는 시늉을 하며 따라와 같이 걸었다.  두사람이 집 가까이에  있는  조선은행 사택 모퉁이를 (현재의주소로용산구후암동 244의 1)을  돌아서니 돌연 형사 3명이 나타났다.
“어이, 어쩐 일이요?”
고봉근이 아는 형사였다. 그래서 검속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김상옥과 함께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처남, 아무래도 여기가 좀 위태로운것 같습니다. 거처를 옮기는 것이 어떨까요.  오늘밤 형사들 눈치를 보니 그냥 가라고는 했으나 처남의 중국모자와 의상을 유심히 보는 것 같습디다.”
“매부, 걱정 말어. 몇 놈쯤이야 걸리면 병아리 잡기지 뭐.”
“그래도 어째, 나는 불안합니다.”
“글쎄, 걱정 말라니까. 아무 염려 없어.”
“처남이 여기 오신지도 달포가 됐으니 그동안 어떤 정보가 들어갔는지 누가 압니까?”
동대문서의 김창호란 한인 형사 는김상옥의집 을 드나들며 가족들과 어머니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저 김상옥의 에미 표정을 보면 김상옥이 서울에 왔는지 알 수 있어.  좌불안석이 되거든.’
김상옥의 어머니는 김상옥이 서울에 와 있으면 불안했다. 애써 태연하게 가장하려 해도 어딘가에서 불안한 기색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김창호 형사는 김상옥 어머니의 표정에서 김상옥이 서울에 들어 왔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런데  종로경찰서 폭탄 사건이 터진 것이다.
“김상옥을 찾아라!”
경찰에서는 김상옥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김상옥의 본가와 주변 가족들의 집, 동지들의 행동을 밀착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 판에 김상옥의 매부 고봉근과 함께 밤 길을 걷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매부 고봉근의 육감이 적중했던 것이다.
결정적인 정보는 조선인 형사 조용수가 입수했다. 형사 조용수의 어머니는 김상옥 어머니와 서로 이웃하여 살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어머니, 혹시 그 집에 무슨 낌새는 없어요?”
조용수의 어머니는 어느 날 조용수에게 말했다.
“그 집 어매가 아들하고 같이 삼판통에를 갔다 오더라고.”
“그래요? 어머니 혼자 아니고 아들하고 같이 말이죠?”

삼판통(후암동) 새벽의 포위망 탈출

1월 16일
초저녁부터  눈발이 흩날리더니 이윽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사방 천지가 흰눈에 묻혀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고봉근이 두번이나 형사들과 마주 친날로부터 이틀째. 그동안 김상옥은 낮에 변장을 하고 서울역에 나가 동정을 살피는 일 외에 저녁 외출은 삼가고 있었다.  ‘총독의 동경행을 확인하기 위해 동지들을 만나 봐야 하겠는데....’김상옥은 다음날 총독의 동경 행을 확인하기 위하여 동지들을 만나 보려고 하다 눈 때문에 주춤거렸다.
‘눈이 너무 많이 오네.  앞이 잘 보이지가 않고 눈을 밟고 돌아오면 발자국
이 남아 뒤를 밟히기 쉽다....’
하는 생각  때문에 저녁에 남대문역  가까이 나왔다가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삼판통 고개를 지나 조선은 행사 택모퉁이를  돌아  다시  감나무 밭 사이 길을 올라와 외딴 집이 세 채 있는 동네 어구에 다다랐을 때 전등 밑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스르르 돌고 있었다.
‘어.’
김상옥은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차림이 초라했다.
‘거지인가 보다.’
조용수 경찰서보고했다.  형사들이 주변에 집중 배치되어잠 복근무들어 갔다. 1월 14일 두 번이나 형사를 만난 것은 이미 경찰의 정보망이 김상옥이 삼판통 여동생 집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종로경찰서의 미와는 김상옥을 잡을  D-데이로 1월 17일을 잡았다.  김상옥의 성격이 지나치게 대범하여 위험의 조짐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 버린 것이다.  김상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대로 대문을 열고 들어와 바로 자리에 누웠다.  곧 잠이 들었다.  꿈자리가 사나왔다.  꿈속에서, 안방에서 자고 있던 누이동생이 죽었다고 야단법석이 났다.  김상옥이 누이 곁으로 가서 누이를 만져보니 정말 뼈만 남은 송장이 되어,
“오빠 나는 죽었습니다.”
하고 슬픈 표정을 하면서 자기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김상옥은,
“이 애야,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1월 17일
새벽 4시 경이었다. 사방은 깜깜한 어둠에 묻혀 있었다. 종로경찰서 형사부장 다무라쵸시치(31)가 사법계 주임 이마세(43)와 동대문경찰서 고등계주임우매다(40), 동대문서의장형사와 함께 17명의 순사대를 이끌고 지금의 후암동인 삼판통304번지 고봉근 집으로 가만히 다가왔다.  다무라는 17명의 형사들을 집 주변에 매복시켰다.
“들어갑시다!”
오전 6시 경 다무라는 자신이 앞장선 가운데 세 형사를 이끌고 집 가까이로 다가갔다.  대문은 빗장이 걸려 있었다.
“넘읍시다!”
다무라를 선두로 네 형사는 남쪽으로 난 판자 담을 훌쩍 뛰어 넘어 마당을 가로질러 건넌방 문 앞으로 다가갔다.
“김상옥, 나와!”
“집은 완전 포위되었다.”
“김상옥! 순순히 손들고 나와!”
다무라가 방문에 대고 소리쳤다.
“.........”
방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정은< 김상옥평전 / 381쪽~386>

링크한 자료에서
1. 김상옥 의사의 1:1000 서울시가 전투가 400:1로 되어 있습니다.
2. 김상옥 의사의  태어난 해는 1889년 입니다.
***김상옥 의사의 자료를 검색하다 보면  위에 정보들이 잘못 되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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