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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판통 총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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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1-09-08 조회 :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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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 처단 예정일 새벽의 피습-후암동 총격전

일본의회에 참석차 동경에 가는 사이토 총독을 서울역에서 처단코자 은신중 이었던 고봉근의 집이 발각되어 1923년 1월17일 은신처에 일본 형사대 21명이 기습, 총격전에서 4명 처단(1명 사살, 3명 중경상)을 입히며 일본 군경 1,000여 명이 포위한 대설 쌓인 남산을 종단 탈출, 왕십리 안정사에서 승복을 빌려 변장하고, 짚신을 거꾸로 신고, 수유리 이모댁으로 피신, 휴식 후 시내 잠입 한다.


1. 총독 처단 예정일 새벽의 피습 -  삼판통 총격전 (1923. 1.17.)

 서울에 와서 김상옥은 곧 김 한, 전우진, 윤익중, 서대순, 정설교, 신화수, 이혜수 등 동지들과 거사를 의논했는데 특히 사이토 총독을 처단하는 문제에 초점이 모아졌다. 1월 중순에는 동경에서 일본 국회가 열리고 거기에 조선총독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는데 그 때 동경으로 떠나는 총독을 서울역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저격 암살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김상옥은 종로서 거사 후에도 서울역에서 가까운 삼판통(현 후암동) 고봉근의 집에 은신하여 1월 17일로 예정되어 있는 「사이또」 총독의 동경 행을 기다리며 일인 순사로 변장하고 서울역에 나가 동정을 살피고 왔다. 김상옥은 이 때 삼판통 고봉근(매부)의 집을 「한독당 서울 혁명사령부」로 설정했던 것이다.(그는 1922년 4월 상해에서 「한독당」의 「혁명사령장」에 선임되었다.)


2. 일제 경찰의 추적과 삼판통 ‘사령부’포위

  일경이 탐지한 징후만 해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서대순의 회사 궤쩍 속에서 난 코고는 소리라든가, 김상옥 어머니의 표정 같은 것은 모두 징후로 치부되는 것들이었다. 특히 동대문 서의 김창호란 한인 형사는 김상옥의 집을 드나들며 가족들과 어머니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이 때 그들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것은  동대문서의 조선인 형사 조용수였다.「기려수필」에 보면 조용수의 모친과 김상옥의 모친은 서로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조용수의 어머니는 어느 날 김상옥 모자가 삼판통에 간 것을 알고 아들에게 말했는데 아들 조용수가 경찰서에 보고하여 저 유명한 종로서의 「미와」가 17일 눈 내리는 새벽에 기습을 명하게 된 것이다.
  김상옥은 그 동안 경계가 심하여 낮에 변장을 하고 서울역에 나가 동정을 살피는 외에 저녁 외출은 삼가고 있었다.  17일 새벽 시커먼 그림자들이 마당으로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었다
맨 앞에 선 것은 다무라 라는 순경이었다. 다무라는 종로서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순경으로 힘세고 날래기로 서울 4대서에서 첫손가락으로 꼽는 자였다.  김상옥은 이불을 말아 세우고 자세를 낮게 하고는 양손에 권총을 들고 문을 향하여 사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도 사범이기도 한 「다무라」는 방안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제 힘에 자신이 있는지라 문 고리를 잡고 힘껏 당겼다.  그러나 안으로 걸린 튼튼한 문고리가 열릴 리가 없었다.
  이 때였다. 김상옥은 자기가 베고 자던 목침을 가지고 「다무라」가 잡아 당기는 문고리의 빗장을 힘껏 쳤다. 빗목이 덜컥 부러지며 문이 횅하니 열렸다.  다무라는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뒤로 나가 자빠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무라는 얼른 일어나 어깨를 으쓱하며 이번에는 방에 있는 이불을 얼싸안으며 그 안에 있는 김상옥을 고스란히 사로잡을 작정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김상옥이 제아무리 비호라 하더라도 털끝하나 상하지 않고 사로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기엔 다무라의 공명심이 작용하여 그는 지금이야말로 그의 유도솜씨며 용맹을 보일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을 것이다. 다무라가 이불을 당기는 순간 이불을 밀어 재치며 비호처럼 일어나 다무라의 가슴 한 복판을 걷어지르니 다무라는 “캑!”하면서 마루 끝에 나동그라졌다.


 김상옥은 꺼꾸러지는 다무라를 따라가며 위로부터 아래로 “쾅! 쾅!” 쏘아대며 번개처럼 “탕! 탕! 탕! ” 연거푸 두 놈을 쓸어 뜨리고 상옥이 여기 있다.  덤빌테면 덤벼라, 오늘 너히  놈들을 모조리 죽일테다!  하며 벽력같은 소리로 새벽 공기를 흔드니 뜰 안은 쥐 죽은 듯 해졌고, 경관들은 혼비백산하여 고봉근과 누이의 등 뒤로, 장독 뒤로, 마루 밑으로 다투어 숨어 버렸다.  불과 몇 초, 김상옥의 전광석화 같은 이 기습에 그 들은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김상옥은 주저하지 않고 마루에서 중문을 향하여 펄쩍 뛰니 한걸음에 두칸 이상을 뛰어 넘어 중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이 때의 일을 동아일보 호외 기사는

『이 모든 것이 불과 2-3분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권총은 여간 해서는 잘 맞지 않는 것인데 참으로 놀라운 기술이었다.  동료들이 한꺼번에 4명씩이나 꺼꾸러지는 것을 보자 형사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요란스럽게 호각을 불면서 권총을 난사하였으나 그 때는 벌써 어둠 속을 헤치고 범인이 달아난 뒤였다. 고 술회하고 있다.

요컨데 「후암동 전투」는 「사이또」총독을 서울역에서 처단키로 계획된 바로 그날 새벽 일경의 역습을 받아 벌어진 전투였던 것이다.

(출처:일제하 서울 시가전 승리 90주년기념 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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