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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대천 항일 서울시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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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1-09-10 조회 :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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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당천의 효제동 '시가전' -  유일한  '서울 항일 승리'


<  경창, 헌병의 4중 포위 >
 1923년 1월 22일 5시 반경 아직 날이 밝기 이전의 새벽이었다. 효제동 73번지 이혜수의 집에 김상옥이 숨어 있음을 확인한 경찰 당국은  우마노경기도 경찰부장이  총지휘관이 되고 후지모도보안과장이 부지휘관이 되어 시내 4대 경찰서의 무장경관 수백 명을 동원하여 효제동 일대를 겹겹이 포위하였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왕십리, 청량리, 망우리 방면에 포진하고 있던 비상경계망을 풀고 이혜수 집을 겹겹이 포위한 것이다.
  삼판통 사건으로 말미암아 언필칭 세계 제일을 자랑하던 그들의 면목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았으므로 이번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주의를 다해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철통같은 경계진을 배치하는 데 먼저 이혜수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부터 제 1진에는 권총을 가진 형사대, 제 2진에는 장총을 든  집총대, 제 3진에는 기마순사대, 제 4진에는 헌병대 및 자동차대의 순서로 배치해서 겹겹으로 둘러쌌다. 그야말로 물샐틈 없는 경계망이 아닐 수 없다.
  이 때 동원된 경찰의 총수효가 1천명이었고 그중 근접포위에는 5백명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치 전쟁 제 1선에서 적의 대부대를 포위하고 일대 접전을 전개하려는 순간처럼 긴장된 태세를 갖추었던 것이다.


<  3시 30분  >
  새벽 3시 반경, 진눈깨비가 계속 내려 길은 몹시 질고 아직은 깜깜한 밤중이었다. 종로경찰서는 악독한 고문을 견디다 못한 전우진을 통하여 효제동 73번지 이혜수의 집에 김상옥이 숨어있음을 알아내고 신속하게 행동에 들어갔다. 경찰당국은 우마노 경기도 경찰부장이 총지휘관이 되고  후지모도 보안과장이 부지휘관이 되어 서울 4대 경찰서에 비상소집령을 내렸다. 왕십리, 청량리, 망우리 방면의 비상경계망을 풀어 효제동 이혜수 집 주변으로 경찰과 헌병 1천 여 명을 집결시켰다. 독립운동가 김상옥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서울 시내 전 병력과 용산의 군병력까지 모두 동원한 것이다.
  그동안 경찰은 지난 열흘 동안 김상옥을 독안에 든 쥐로 생각했다가도 번번이 허탕을 치는 수모를 당하였고, 종로경찰서가 폭파당함으로써 민심에 큰 영향을 주어 독립운동에 기대가 크게 높아진 것에 대한 우려 뿐만 아니라, 삼판통 사건으로 말미암아 정복 순사 천 명을 풀어 남산 일대를 포위하고 검문검색을 강화해 왔으나, 김상옥의 신출귀몰한 탈출을 막지 못하고 그의 종적을 파악조차 하지 못하였으니, 언필칭 세계 제일을 자랑하던 그들의 위신과 체면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았으므로, 이번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주의를 다해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 4시 30분 >
 철통같은 경계진을 배치하는 데 먼저 이혜수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부터 제 1진에는 권총을 가진 형사대, 제 2진에는 장총을 든 집총대, 제 3진에는 기마순사대, 제 4진에는 헌병대 및 자동차대의 순서로 배치해서 겹겹으로 둘러쌌다.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경계망이 아닐 수 없다.
총 1천 명의 경찰과 군병력 중 약 5백 명을 투입하여 근접포위망을 구축하고 났을때는 새벽 4시경이었으나 우마노 후지모도 등은 즉시 수사 개시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앞서 삼판통에서 김상옥을 놓친 것은 새벽어둠속에서 교전한 까닭이라고 생각하고 날이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긴장된 시간을 보내던 우마노가 4시 반경 첫 명령을 내렸다. “제1대, 지붕위로 올라가 김상옥의 숨은 방의 위치를 확인하고 감시하라.” 명령을 받은 이십여 명 형사들이 차례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김상옥의 방을 굽어다 보고 「어느 방이야」 서로 수군거렸다.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겨울 아침이었다. 이혜수는 동생 창규가 학교에 일찍이 나가려고 일어나 부스럭거리는 바람에 잠을 깼다. 그때 밖에서 수런수런 사람 소리가 들리고, 지붕 위에 시꺼먼 물체들이 옹기종기 모여 움직이고 있었다. 순사 떼가 틀림없다고 생각한 이혜수는 김상옥의 방으로 건너가서 “오라버니, 경찰들이 몰려왔어요. 얼른 피하세요!, 얼른 반침 안으로 들어가셔요”말했다.
잠귀가 예민한 김상옥이 벌떡 일어나 이혜수가 가리키는 반침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들의 정체가 드러난 것을 알게 된 경찰은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주임 「구리다」경부를 선두로 이미 지붕 위에 포진하고 있던 형사대들도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위협사격을 가하며 주인을 부르니 이혜수의 부친 이태성 노인이 문을 열고 나가자 형사들은 다짜고자 노인의 뺨을 갈기고 발길로 차면서 "왜 꾸물꾸물하는 거야"하며 포승으로 묶었다.


  -  일경의 공격, 그러나 김상옥 의사가 쏜 탄환에 일경 쓰러지다 !  -

  이 때 김상옥은 벽장 안에 고서를 쌓아 놓은 뒤에 엎드려 두 손에 권총을 들고 일경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을 본 구리다는 겁결에 권총을 발사했으나, 도리어 김상옥이 응사한 탄환에 맞아 그대로 쓰러졌다. 이에 뒤따르던 김창호 등의 형사대는 일시에 마루와 마당으로 쫓겨 피해 나갔다.

이 때의 일을 '기려수필'은
22일 새벽 각 경찰서 순경이 전우진을 끌고 효제동으로 왔으나 상옥이 보이지 않자 구리다 경관은 방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했다. 상옥이 병풍 뒤에 숨어서 구리다를 향해 쏘니 가슴에 명중했다.
 구리다가 쓰러지자 이를 신호로 일경은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니 효제동 일대에는 마치 시가전을 방불케하는 총성으로 뒤덮혔다. 1대 1000의 시가전이 벌어진 것이다. 김상옥의 용맹성과 사격술 앞에 일본 군경이 감히 접근을 못했다. 사격이 그치고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완전히 포위되었다!’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


  -  74번지를 지나 76번지로 피신하나 집주인의 고자질에 72번지(김상옥의사 생가)로 피신 -

  김상옥 자신은 완전히 포위된 불리한 상황임을 깨닫고 즉시 다락의 담벼락을 쾅쾅 차서 벽을 뚫고 그 옆집인 효제동 74번지를 지나 76번지로 피신했다. 김상옥은 그 집 주인 김학수에게 이불을 한 개 빌려 주면 그것으로 적탄을 막고 몇 놈 더 쏘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고 애원하였으나 그는 도리어 밖으로 뛰어나가 일경에게 우리 집에 도둑놈이 들어왔다고 일러주었다.


  - 담을 넘으며 동상 걸린 발가락이 떨어져 나감 -

  김상옥이 아직도 73번지 반침 안에 든 줄만 알고 있던 일경은 김학수로 부터 76번지에서, 다시 72번지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에도 비호같은 놈이라 미워하고 무서워했던 김상옥이라지만 이 전광석화 같은 행동에 그들은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상옥이 76번지에서 72번지로 담을 넘어올 때 동상 걸린 발가락이 하나 떨어져 있던 것은 그 후 5~6일이 지나서 현장 검증 때 발견된 것이었다.


-  " 김상옥 항복하라!"  우미노의 항복 권유.  -

이 때 조선인 형사 김모가 나타나자 우마노 등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하고 물었다.  종로서 고등계 조선인 형사로 독립군 수사에 제일인자라는 김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최후의 육탄전을 하기 전에 73번지와 76번지 등을 잘 지키고 범인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 넣은 다음 스스로 항복하고 나오도록 권해 보자고 했다.  「우마노」는 즉석에서 소래가 겟고-소-시요(그것 좋소, 그렇게 하자.)하고 부하들에게 73, 74, 76번지의 세 집을 잘 지키게 하고 김상옥이 있는 72번지를 향하여 항복을 권했다.
 "김상옥! 항복하게, 더 이상 저항하면 손해일세. 어서 나오게!" 김모는 말을 타고 다니며 외쳤다.  긴소오교꾸 고오산시로 ! "김상옥! 항복하라!"  긴소오교꾸 데데고이 이마데다라 쓰미와 가루이죠 (김상옥 나오너라, 지금 나오면 죄는 가볍다) 우마노의 항복 권유였다. 김상옥은 이 소리를 듣고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이 시간적 여유를 이용하여 탄환을 재고 전투 준비를 했다. 전투 준비를 끝내자 김상옥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72번지의 집안 구조를 살폈다. 이제 날이 거의 밝아져서 사람들의 모습을 완전히 볼 수 있게 된데다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30분 정도나 항복을 기다리던 일경들은 드디어 부지휘관 「후지모도」의 주장으로 사격을 개시했다. 총격을 가하면서 항복을 권유했으나 그는 조금도 굴함이 없이 반격을 해오므로 피아간에 불을 뿜는 총격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동안 김상옥의 총에 맞아 쓰러진 사상자는 「구리다」, 김창호 외에도 수명이나 되었다. 문자 그대로 일기당천의 단병접전 이었다. 72번지의 깊숙한 담벼락에 몸을 숨기고 있는 김상옥의 모습을 그들은 볼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우마노」는 일대 기지를 발휘했다.


  -  "지붕에서 아래로 향하여 쏘게 하시오.” -

  “오꾸죠까라 시다오 우다세나사이 ”지붕에서 아래로 향하여 쏘게 하시오.”라고 하니 모두가 그 전술이 좋다 하였다. 곧 「후지모도」는 동대문서 형사대를 북쪽 지붕 위에 올라가게 하고 종로서 형사대를 동쪽 지붕 위에 올라가게 했다. 기타는 73번지와 76번지의 지붕 위에 올라가게 했으나, 선두에 올라가 솔선하여 용감하게 뛰는 놈이 없었다. 「우마노」의 생각에는 위에서 아래로 쏘는 것이 대단히 좋을 듯 하지만 기와장 위에서 하는 행동이란 우둔하고 또 자기의 몸이 지붕 위에 노출되니 김상옥의 반격이 무서워 그들은 올라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후지모도」가 고함을 쳐 형사대를 독려하자 그제서야 몇 명이 올라갔다.


  -  김상옥의  지붕을 향해 쏜 탄환에  맞아 일경은 지붕에서 떨어졌다.  -

  김상옥은 형사대가 지붕 위로 올라가서 자기를 공격하려는 것을 알고 양손에 권총을 들고 지붕 위를 노리고 있었다. 이윽고 북쪽 지붕의 기왓장 위에 한 놈의 머리가 솟았다. “에잇!” 김상옥의 왼팔은 번개처럼 불을 뿜었다. 거의 동시에 북쪽 지붕 위에 있던 한 놈이 맞아 뒷집 73번지로 굴러 떨어졌다.  이와 거의 같은 시각에 동쪽 지붕 위에도 한 놈이 솟자 이번에는 김상옥의 바른 팔에서 팡팡 터져 나가니 “으악!”하고 떨어지는 데 이놈은 바로 72번지 김상옥이 있는 마당으로 나무 등거리처럼 덜컥 떨어졌다. 이렇게 두 놈이 떨어지고 나니 지붕에 올라갔던 형사 놈들은 지붕 뒤에가 딱 엎드려 숨도 쉬지 못하였다. 「우마노」 등은 기세를 올리기 위하여 문전에서 공중에 대고 엄호 사격을 하게 했으나, 번뜻하는 동안에 두 형사가 희생되고 그와 동시에 옥상 공격이 뚝 끊어져 버림을 보게 되자 에이 쿠쇼“에이 망할” 하며 이를 악물고 분개했다.


  -  김상옥 하나에 이렇게 쩔쩔매서야 어떻게 하나?” 하며  분개하였다 .  -

 도꼬데모 자마와스 우찌마쇼는 “아무데나 닥치는 대로 쏩시다.”하고 김형사가 제의했다.
“요시 데와 젠고까라 우도 마에노 도비라와 다다끼 고와시데 소꼬까라 우데 응, 그러면 전후에서 쏘자 앞대문은 두들겨 부수고 거기서 쏘아라.” 「우마노」는 악을 쓰듯이 호령했다. “긴소오교꾸 잇삐끼니 곤나니 마욧데 도오스루까 김상옥 하나에 이렇게 쩔쩔매서야 어떻게 하나?”하며 분개하였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74번지 즉 72번지의 뒷집에서 판자 벽에다 대고 또 한패거리의 형사대는 대문을 열 것도 없이 발길로 차서 부셔 버리고 거기를 통하여 삼팔식 장총사격을 시작했다. “부우웅” “탕! 탕!” 장총 소리가 아침 공기를 흔들었다. 결국 무차별 난사하였다. 마당 안팎에는 연기가 자욱하고 함부로 쏘는 총탄에 장독이니 유리창이니 이집 살림은 쉴 새 없이 깨뜨려졌다. 이 유탄에 첫 희생자는 이 집 노인 이진옥(61세)씨였다. 김상옥도 이 유탄을 피하기가 곤란했다.


  -  김상옥의 이 날쌘 동작과 사격술은 비호같았다.  -

  자세를 낮게 하고 응사를 하고 있으니 형사대측이 이 쪽의 전력이 약화된 것으로 알고 앞문을 차고 5~6명이 몰려들고 뒤 판자벽으로도 3~4명이 돌입하여 동시에 협공을 했다.  김상옥은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나와 먼저 앞대문으로 들어오는 놈들에게 바른 손을 휘둘러 “탕! 탕! 탕!” 연발로 쏘니 선두에 선 두 놈이 쓰러져 뒹굴자 뒤따르던 놈들이 혼비백산 대문으로 도로 뛰어나가 버렸다. 후면에 들어오는 놈들에게 왼손을 휘둘러 쏘니 또 한 놈이 “아악!”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나뒹군다. 김상옥의 이 날랜 동작과 사격술은 참으로 비호같은 솜씨였다.「우마노」는 다시 일제 사격을 명하고 “에이 쿠소”를 연발했다. 김상옥은 먼저보다도 몸 둘 위치가 더욱 곤란해졌다. 몸을 어디다 의지하고 유탄을 피할 곳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  김상옥은 날쌔게 변소로 뛰어 들어갔다 . -

 이 때 김상옥의 눈에 띄인 곳이 저편 구석에 있는 변소이었다. 김상옥은 날쌔게 변소간으로 뛰어들어가 허리에 찬 탄환을 뽑아 두 권총에 나누어 재었다. 다행히 이곳은 움푹 들어가 대문이나 74번지 쪽에서 쏘는 직선 탄알은 닿지 않는 곳이었다. 김상옥은 사격을 중지하고 변소간 틈 구멍으로 전세를 보고 있었다. 벌써 탄환 지닌 것도 많지 않아 함부로 쏠 수가 없었다.

  이 편이 잠잠해 지자 형사대는 다시 엄호 사격 아래 지붕으로 솟아오르고 동시에 앞문 뒷문으로 총공격의 태세를 취하고 나타났다. 김상옥은 양손의 권총을 자유자재로 돌려 우박처럼 탄환을 퍼부으며 번개처럼 사격을 행하니 그 사격이나 동작의 민첩함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것 같았다.

  이렇게 한참 동안 싸워 적을 침묵시킨 다음 다시 변소로 들어가 빈 탄환 껍질을 빼어 버리고 나니 바른 편발을 뗄 수가 없었다. 바른편 넓적다리를 맞은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맞은 것이다. 탄환도 단 세 발 밖에 남지 않았다.

  김상옥은 탄환이 세 발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넓적다리에 대한 통증이 더욱 심해지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 효제동의 혈전에서 일경에게 입힌 피해는 16명의 사상자를 내었던 것이다.


 <7시 30분 >

 - 당당. 장렬한 최후를 스스로  -

  얼마 후 양편의 총격이 멈춘 정적 속에 변소에서 한방의 총성이 울렸다. 최후로 조국의 독립과 번영을 하늘에 빌면서 자기 손으로 가슴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장렬히 자결한 것이다. 김상옥은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다.”는 결심대로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상옥의 신출귀몰함과 용감무쌍함에 경찰은 상관의 명령에도 아무도 감히 시신을 확인하려 나서는 자가 없었다. 결국 어머니를 불러와 확인하게 했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단신으로 1천 여 명의 무장경찰과 3시간 이상 접전하다가 이렇게 최후를 마친 것은 일제 35년 동안 김상옥 사건 이외에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김상옥의 최후 모습을 「동아일보」 호외(1923. 3.15) 기사는 “숨이 진 후에도 육혈포에 건 손가락을 쥐고 펴지 아니하고 숨이 넘어가면서도 손가락으로 쏘는 시늉을 했다는데 김상옥은 원래 날쌔어 모 청년회의 운동 부장을 한 일도 있었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출처:일제하 서울 시가전 승리 90주년기념 학술대회, 이정은 <김상옥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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