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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개벽에 실린 1923년 2월 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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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1-09-13 조회 :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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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잡지 1923년 2월호는 그해 1월 22일 사건 직후에 나온 잡지이다. 아마도 이 놀라운 사건을 잡지에 싣기 위해 급히 서둘렀거나 발행을 며칠 늦 추었을지도 모른다.  이 잡지에 김상옥 시가전 사건이 당시인들에게 얼마나 놀라움을 주었는지를 보여 주는 글이 실려 있다. 글쓴이  춘파는 1933년 개성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고려시보발간 동인이었던 박재청으로 보인다.  박재청은 고려시보 52 발행 초기에는 부장으로서, 이후에는 주필로서 활동하였다.

M형.놀내지마십시오.17일 순사총살의범인 그 대담효용 한범 인은 금 22일 새벽 두시반 부터 동 7시반까지  의장시간에 시내효제동73번지에서(3가를 연하야) 수색대와 몹시 격투를 하다가그만 경관의 탄환에 피살되얏다 함니다. 악사인지 선사인지 그는 별문제로하고 여하간 효용대담의 이외다 17일 그 일을 하고 곳 남산을 넘어 왕십부근으로 잠복해 다니다가 결국 효제동에 피신 하얏다가 야삼경시에 단신 쌍총으로 80여 명의 경관대와 3가를 연하야 도피 반항 격투로써 노호 가티 날뛰다가 급기야 세궁하야 총끗헤 혼을 날려버렷슴니다.  과연희한의 용자이외다. 최후 일각까지 권총은 양손에 꼭 갈나쥐고 손 고락으로 방아쇠까지 당기면
서 죽엇다 함니다. 그리고 이 대활극중에는 동대문서 율전  경부가 중상되고 인가의 노인 가 중상되얏슴니다. 범인의 성명과 주소  와 내력등은 아즉 기재금중에 잇슴니다.  시체는그의 가족에게 인 도되얏슴니다.  M형. 나는 가슴이 울렁거림니다. 왼몸이 부루루 떨닙니다.  세상에 왜 이런 악착스런 일이 잇게 하는가.
아―한우님 하고 붓대를 내여 던집니다.  아모리 해도 더―쓸 용기가 업슴니다.

언론검열과 통제 속에서도 이 만큼의 찬탄 섞인 놀람의 글을 실었다는 것은 김상옥의 대담함과 용기가 얼마나 큰 감명을 주었는지를 말해 준다. 신문과  잡지 기사에서 김상옥 의사가 일본경찰의 총에 피살된것으로나오 나이는사실이아니다. 그것은 경찰의 공적을 과장하기 위해 그렇게 발표한 것이며, 실제는 김상옥의사가 상해를 떠나 올때 임시정부요인들에게, “나는자결하여뜻을지킬지언정적의포로가되지는않겠소.”라고 밝힌것 처럼 마지막 남은 한 발의 탄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정은<김상옥 평전 439쪽~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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