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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공보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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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1-09-01 조회 :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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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신단 조직하여  3.1운동의 지속과 확산을 위해,  4월1일 동대문교회 피어슨 여사 집에서
    항일비밀 결사인 ‘혁신단’ 조직, <혁신공보>를 발행하여 민족의식 고취 및 독립사상 계몽에 전념하다
    일경에 체포, 종로경찰서에서 40여 일간 고문/고초를 당함.

2.  3.1운동기의 지하신문과  격문류 는 76종이 있다.  이 중에서
 < 조선독립 신문>의 발행부수  1만부 로 가장  많이 발행 했으며
  <혁신공보>의 발행부가  3천부로  발행부수 순위가 2위이다.
  ( 참고 : 김상옥평전/이정은/2014,  213쪽~218쪽)

3. 혁신단과 혁신공보

-혁신단-
      ‘청년 학생들의 용기와 열정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김상옥은 이게 꿈인가 잘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날이 있구나. 이런 날이 있어.’
    ‘이 민족은 죽지 않았어.
다만 기회를 기다리고 숨죽이며 있었을  뿐이야.’
    ‘자,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젊은 청년들의 외침,  이 피끓는자유와 독립의 외침을 헛되이 할 수 없지 않은가.’
김상옥은 3․1운동에서 받은 깊은 감동을 오랫동안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이 땅의 백성으로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무언가 강력하게  마음으로 이끌려 자발적으로 사명을 찾아 가는 일은
두려울 것 같지만,  신나는 일이다.  그것은 존재가 살아 있는 최고의 경지에
다가 가는 일이다.  그것은 촛불이 자신을 태워서 세상을 밝히는 것이나,
짐승이나 사람이 자식 새끼를 낳아 목숨을  걸고 키우고 지키는것,  의인과 열사,
영웅들이 자기 한 몸 희생을 감수하고 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다 세상에 태어난
존재의 의미를  더 크고,  더 높고 ,  고상한 데서  찾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을 위해 존재 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생명도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대가로 지불해야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 혼자 잘살려고 아등거리거나,  자기 혼자 살아  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때  삶이 비참해지고 비루해지는 때인 것이다.
그러나 3월5일 학생단이 주도한 대규모 시위가 끝난 후에는 200명 500명
정도의 산발적인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특히 각급 학교가 총독부 명령에
의해 휴교에 들어간 후에는 3월1일 이나 3월5일의 시위 같은 대규모 시위를 볼 수 없었다.
    ‘이 위대한 운동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대로 끝날 수는 없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의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당시로서는 여전히 헌병경찰의 삼엄한 통제하에  있었다. 
할 수 있는 일도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피워 올린 독립정신의 불꽃을 계속 활활 타게 해야 해.’
    ‘이 운동이 지방으로,  농민들에게로,  노동자들에게로 퍼져 나가게 해야해.’
    ‘이렇게 끝나게 할 수 없어.  무언가 나도 힘을 보태야 해.’
김상옥은 일로 잔뼈가 굵은사람이었다.  일을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무서운 실천력을 갖고 있었다.
1919년 4월 1일이었다.  그날은 지방으로 퍼져나간 시위운동이 가장 절정에 이른 날이었다.
김상옥은 같은 뜻을 갖고 있었던 서울 시내 고등보통학교 재학 또는 졸업 생인
 박노영(중앙고보 졸업반),  윤익중(중앙고보 졸업반),  신화수(불교학원 졸업반),
정설교(보성중학 3년)등 학생들을  모았다.
김상옥은 이들을  동대문교회 내 영국인 피어슨여사  집으로 오게 했다.
      “학생들,  난 이번에 학생들의 애국심에  큰 감명을 받았소.
        그런데,  독립운동이 이대로 끝내게 할 수는 없소.”
    “이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읍시다.”
    “그러기 위해 조직을 만듭시다.”
    “좋습니다."
    “우리 조직의 이름을 혁신단으로 합시다.”
    “좋겠습니다.”
김상옥은 이들 학생들과 혁신단 조직을 결의하였다.

- 혁신공보-
며칠 후 김상옥은 학생들과 연지동 16번지 휘문중학생 이춘식 집에서 다시 모였다.
 혁신단의 이름으로 무엇을 할것인가 사업을 의논하기 위해서 였다.
      “우리가 무엇을 하면 좋겠소, 혁신단의 이름으로 말이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일본 군경이  삼엄하게 경계조치를  취하고
있는 속에서 다시 대규모 만세 시위를 벌일 수도 없었고,  총칼로 무장하고
혁명을 일으킬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등사판으로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만듭시다.”
    “「조선독립신문」 같은 것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할수 있는 선택이 극히 제한 되었다.    결국 결론은 유인물을 인쇄 배포하여
시위운동을 지속적으로 확산하는 선전 활동이 거의 유일한 방안으로 보였다.
이들은 지하신문 발간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혁신단에 서대순,
 우편국에서 배달부로 있던 전우진,  김화룡,  지주택 등을  단원으로 추가 합류시켰다.
 일을 체계를 세워 조직적으로 취재,  편집,  논설,  인쇄,  배달,  재정,  선전,  외무,
  해외통신 등의 역할을 분담하였다.
      “그럼 우리 신문의 제호는 ‘혁신공보’가 되는 겁니다.”
      “그래요, 좋아요.”
모두 ‘혁신공보’라는 이름으로 유인물을 제작하여 시중에  배포하기로 했다.
유인물 제작에는 준비가 필요했다.  등사원지와 인쇄할 내용을 등사원지에  적을 철필,
 원지를 대고 미세한 글씨 구멍이 나게 하여 잉크가 종이에  묻어 글씨가 종이에
 나타나게 할 등사철판,  등사를  할  등사판과 잉크를  묻혀 밀 롤러를  갖추어야  했다.
 종이는 한 번 만 하고 말  일이  아니기에  충분히 확보해 두어야 했다.
1919년 4월10일경 부터 준비에 착수했다.  1주일 후인  4월17일에  혁신공보
제1호가 발간 되었다.  등사기구 준비와 소모품을 구하는 데는 연장자이고
사업을 하고 있었던 김상옥이 자금을 대었을 것이다.
 김상옥은 또한 조직과 유인물의 배달을 자청하여 맡았다.
 혁신단원들은 다음과 같이 임무를 분담했다.

김상옥  :    단조직과 선전배달
박노영  :  편집 취재,  논설
윤익중  :  재정조달,  해외 통신
서대순, 전우진, 김화룡  :  인쇄, 배달
신화수 :    편집, 취재 일부

박노영이 국내의 정보를 수집하여 기사를 작성하는 동안 윤익중은 압록강
건너 안동에서 궤짝에 넣어 오는 비밀 통신을 받아 해독했다.   
비밀통신은  흰노트에  화공약품으로  글씨를  써서  여기서 다시 약품을  발라  불에  쪼여서
 글자가 나타나게 하여 보았다.    원고가 완성되면 연락원 김화룡이 밤을 타서 인쇄 담당
서대순을  불러 내어 전한다.    서대순은 수하동보통학교에 근무했다.
서대순은 밤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다려 학교 천장에 설치해 놓은 비밀 등사 장소에 올라가 
롤러를  밀어  새벽 5시경까지 밤새 약 3천 장을 등사했다.
새벽 5시가 되면 배달대가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각기 책임 부수를 받아 배달을 했다.
김상옥은 항상 흰 말총모자를 쓰고,  채소장수  인양  파란 궤짝을 끌고 와서
혁신공보를  궤짝의  채소 밑에  감추고  “수고했소!”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는
청계천을 건너느리골(현효제동),  양사골(종로6가)을  거쳐 동대문을 지나 창신동까지
 골목골목을 다니며 서로를 믿는 동지나 친지들의 집을 찾아  문문 틈으로 넣어 배포했다.
혁신공보는 5월 11일에 제21호가 발간되었다.  첫호가 나온 지 25일 만 이었다.
이는 기간 중 주1회 4일을 제외하고 매일 발행되었다는 말이다.
기간중 일요일이 4번 있었는데 어느 요일에 휴간했는지 알수 없다.
제21호 발행일인 5월11일은 일요일 이었던 것으로 보면 일요일이 아닌 
한 날을 쉬었는지 모른다.    김상옥을  비롯한 혁신단  나이 어린 동지들이
얼마나 열심히 혁신공보를  발행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제21호에는 「학생제군에게」,  「미일전쟁론」같은  논설을 실었다. 
 「학생제군에게」는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하나 민족의 상황이 학생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고  하며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미일전쟁론」은  “일본은 미국이  한국을  위하여 전쟁을  할리는 만무하다
하나,  장래의  미일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이 미 일전쟁은  다만 미국과  일본
양국의  전쟁이 아니라,  세계전쟁이며,  정의와 선,  불의의 충돌이며,  야심과
도덕의 합전이니,  전쟁의 승부는 실로 조물주의 본심에 의해 판결되리라”고
함으로써 앞날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예측한 글이다.  이런 논설과  함께
「시위운동의속보」, 「아군정부 동원설」, 「우방국의 시위」 등의  짧은 보도 기사를 실었다.
제34호는8월 12일에 발행되었다.  5월 11일의  21호로부터  94일간의 기간에
 13호가 발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 시기에  와서는 매일  발행에서  주1회
발행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전에 비해  뜸하게 발행하게 된데는
 비밀리에 하고 있던 혁신공보의 발행이 일제 관헌의 귀에 들어가 감시와 추적의
손길이 미쳐왔기 때문에 극도의 보안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34호의 주내용은 6월29일에 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안창호의
취임연설 특집이었다.    혁신공보가 싣고 있는 안창호의 취임연설에서
주목되는부분 “우리가 우리 주권만 찾는것이 아니라 한반도위에 모범적인
공화국을 세워 이천만으로 하여금 천연의 복락을 누리려함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희생하여 이목적을 달성하여야 하겠오.”
독립운동의 목표와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으로서 이보다 더 아름답고 명확하게
언급한 말이 있을지 궁금하다 .  혁신공보가 안창호 내무총장 취임이 2달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 취임연설을 실었던 것에는 독립운동의 정당성과 우리 민족이
나아 가야  할 길을 이 연설을 통해 국내 동포들에게 전파하고
공유 하고자 한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발췌 : 김상옥평전/이정은/2014,  207쪽~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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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제공: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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