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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최후의 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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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6-01-21 조회 :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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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최후의 항전

 

1923122일 새벽

 

경성은 잠들어 있었지만,
효제동은 이미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효제동 73번지.
김상옥 의사의 생가 바로 옆, 동지 이혜수의 집이었다.
경성 한복판에 겹겹의 포위망이 좁혀졌다.
한 사람을 향한 포위였지만, 그 규모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날이 밝자 형사대가 일제히 들이닥쳤다.
집 안은 곧 총성으로 갈라졌고,
김상옥은 벽장에 몸을 숨긴 채 고서를 쌓아 방어했다.

 

첫 발이 울린 순간,
효제동은 더 이상 주거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전장이 되었다.

 

그는 포위망의 흐름을 읽었다.
다락 뒤편 벽을 뚫고 담을 넘어
효제동 74번지, 다시 76번지로 이동했다.
그러나 집주인의 외침으로 위치는 드러났고
포위는 더욱 조여 왔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김상옥은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자신이 태어난 집, 효제동 72번지로 돌아왔다.
삶이 시작된 그 자리는
끝까지 맞설 장소가 되었다.

 

김상옥! 항복하라!”

 

일본 형사대의 외침이 울려 퍼졌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지붕 위와 앞뒤 출입구를 오가며
총성이 응답했다.

 

양손에 권총을 쥔 김상옥은
단신으로 포위된 공간을 지켜냈다.
3시간에 걸친 총격전 속에서
일본 경찰 15~16명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경성은 숨을 죽였고,
도시는 단 한 사람의 투쟁 앞에 멈춰 섰다.

 

격전 끝에 그는
오른쪽 넓적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남은 탄환은 몇 발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분명했다.
항복은 없었다.
포로의 삶도 없었다.

 

마지막 남은 탄환으로
김상옥은 스스로 생을 마쳤다.

그의 신출귀몰함과 용감무쌍함 앞에서
일제 경찰은 상관의 명령에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를 불러와
그의 죽음을 확인해야 했다.

 

조선총독부 바로 곁,
경성의 중심에서 벌어진 이 최후의 항전은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전례 없는 투쟁으로 기록되었다.

 

김상옥 의사의 마지막은 패배가 아니었다.
1923122, 효제동에서
멈춘 것은 그의 생명이었으나
그 자리에 이어진 것은
저항의 역사,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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