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의거, 오사카 아사히 신문 보도자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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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5-09-18 조회 : 300본문
종로경찰서 폭탄 테러범 총에 맞아 사망, 경찰관 4명을 죽이고 다치게 한 남자가 끔찍한 음모의 범인인가?
조선에서 음모단의 폭탄 사건에 관하여 신문 기사 게재 금지가 해제됨에 따라 그 개요는 어제자 석간과 조간에 기재되었으나, 더욱이 주범으로 인정해야 할 김상옥이 우리 경관에게 폭발물을 던지고 결국 총살당하기까지의 전말 기타를 아래에 상세히 보도한다. (경성 전보)
조선총독부 경관대에 의해 1월 22일 결국 사살된 흉한은 실은 같은 달 17일 미명(未明) 6시경 경성 삼판통 조선은행 사택 아래쪽에서 17명의 경관대를 사격하여 경부 1명, 순사부장 1명을 사망케 하고 경부 1명에게 중상을 입힌 범인이었다.
동대문경찰서에서는 종로경찰서 폭탄 사건 이후 범인 수사에 활동하던 중, 경성에서 조선독립군 자금이라 칭하며 부호들을 찾아다니며 금품을 강요하는 4명의 불령선인(不逞鮮人: 불온한 조선인)을 발견하여 체포 심문한 결과, 의외로 이들 4명의 입에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설치한 범인의 일당이 아직 경성에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설하였다. 이에 담당 경찰관은 엄중한 심문을 진행하였고,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폭탄 범인은 최근 길림(吉林)에서 잠입한 김상옥(30세)이라는 불령선인으로, 경성 삼판통 3정목 2번지에 있는 여동생의 혼인집 고봉근(高奉根)의 집에 잠복하고 있다고 자백하였다.
동대문서에서는 즉시 경무국 및 도경찰부에 급보하고, 순식간에 경성 각 경찰서의 총동원이 이루어졌으며, 별도로 동대문, 종로, 본정(남대문로) 3개 경찰 합동 17명의 경관 수사대를 조직하였다. 이를 다시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종로경찰서 이마세(今瀬) 사법주임 경부, 다른 한 팀은 동대문경찰서 우메다(梅田) 경부보가 지휘하여 16일 야반(夜半)부터 대대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김상옥이 잠복해 있는 삼판통의 고봉근 자택을 멀리 돌아 포위하고 점진적으로 접근하여 17일 오전 5시 고 씨 댁에 들어가려 하였다.
새벽을 깨우는 권총의 난사, 포위를 뚫고 범인 도주
그런데 안쪽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기에, 이마세 경부, 우메다 경부보는 유도 2단 면허를 가지고 괴력으로 알려진 종로서의 형사 타무라 에이이치로(田村栄一郎) 씨와 함께 온돌 문을 걷어차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이미 이를 간파한 김상옥은 준비해 둔 권총을 겨누어 맨 먼저 들어온 타무라 형사를 사격하여 코에서 뒤통수로 관통하는 중상을 입혔다. 이어서 들어온 우메다 경부보의 오른손을 쏘고, 다시 이마세 경부의 폐 부분을 사격하였다.
이때 경관대가 잠시 움찔하는 틈을 타 실외로 도주하여 외부를 포위하고 있던 경관대마저 돌파하고 남산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는 도주 당시의 복장, 즉 검은 두루마기에 흰 바지, 헌팅캡을 눈썹까지 깊게 눌러쓰고 맨발로 산속 이곳저곳으로 도주로를 찾았다. 오후 1시 반경 대담하게도 개미 한 마리도 빠져나갈 틈이 없을 정도로 쳐진 경계망을 돌파하고 일직선으로 왕십리(往十里)로 도망쳐 지인 이모(李某) 씨 댁으로 달려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옷 전부를 갈아입고 그 집 마루 밑에 잠복하였다.
그가 탈출한 지 약 3시간 후 포위했던 경관대는 비로소 그의 탈출을 알게 되었고, 쌓인 눈에 찍힌 그의 발자국을 유일한 단서로 행방 수사에 착수하였다. 그의 발자국은 광희문 밖 화장터까지는 확인되었으나 그 이후로는 사라져 보이지 않아 수사에 큰 차질을 빚었다. 그러나 연구 결과, 왕년 불령(不逞) 소동 시 왕십리에서 도주하여 그곳 지형에 정통하고 있으니 반드시 왕십리에 잠복해 있을 것이라는 의견에 도달하여, 즉시 수사대는 왕십리로 달려가 심증이 가는 곳을 수사하였으나 결국 찾지 못하였다. 그는 기차로 왕십리에서 도주했을 의심도 있어 뒤늦게나마 사복 경관 다수를 열차로 보내 심증이 가는 곳 수사를 시작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