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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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3-06-08 조회 : 874본문
저자 및 역자소개
김동진
최근작 : <전기수 설낭>,<임진무쌍 황진>,<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책소개
1920년대 식민지 조선, 식민 통치에 대항해 독립을 쟁취하려면 암살과 파괴, 테러라는 과격한 방법뿐이라고 생각한 항일 비밀결사 단체가 있었다. 지금은 잊혀진 이름, 김상옥, 김시현, 이태준, 황옥이다. 빠른 전개와 드라마틱한 장면, 독립투사 김상옥과 황옥에 얽힌 비화를 읽는 재미와 대담무쌍하게 펼쳐지는 전투 장면이 이 책의 매력이다.1923년 경성에서 기획된 의열단의 2대 투쟁, 김상옥의 장렬한 죽음과 2차 폭탄암살 투쟁을 위한 폭탄 반입 작전. 그들이 보여준 항일 투쟁과 치열했던 삶을 당시 신문기사와 잡지, 관련 자료와 논문 등을 찾아내 재구성, 긴박감 넘치는 논픽션 극장으로 만들었다.
책속에서
P. 101 이튿날 장규동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시영, 조소앙, 윤기섭, 조완구, 신익희 등 임시정부 동지들이 달려와 3일장을 지내기로 하고 장례를 준비했다. 장례비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때마침 백범 김구가 부음을 듣고 장례비조로 중국 돈 100원을 보내왔다.실의에 빠져 있던 상옥은 그 돈을 보자 관을 사겠다며 혼자 시내로 나갔다. 하지만 그는 관을 사오지 않았다. 그 대신 비장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모제르 7연발 권총을 꺼냈다. 관 대신 총을 산 것이다. 장례를 준비하던 임정 동지들은 그런 상옥의 행동을 어이없어 했다.
P. 131~135 상옥의 몸도 만신창이였다. 무수히 쏟아지는 파편과 유탄을 맞아 몸 이곳저곳에서 피가 흘렀다. 74번지 쪽 벽은 이미 사람이 충분히 지나다닐 만큼 너덜너덜 해진 상태였다. 상옥의 대응사격이 점점 잦아지자 경찰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다시 생포 작전을 시작했다. 우마노는 72번지 대문과 74번지 무너진 벽을 통해 체포 조 형사들을 동시에 진입시켰다.김상옥이 그렇게 쉽게 당할 리 없었다. 오른손 총으로는 대문 쪽을, 왼손으로는 벽 쪽을 향해 동시에 사격했다. 좀 전까지 별 저항이 없자 마음 놓고 진입하던 형사들은 화들짝 놀라 집 밖으로 도망쳤다. 몇몇 형사는 팔과 다리에 유탄을 맞고 겨우 기어 나왔다.…… 상옥은 남은 탄환을 확인했다. 세 발밖에 남지 않았다. 이미 가슴과 허벅지, 다리 곳곳에 총을 맞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극한의 고통이 엄습해왔다. 문틈으로 형사들이 다시 진입하는 게 뻔히 보였다. 너무도 분하지만 더 이상 어찌 해볼 수 없었다.…… 바깥에서 “투항하라.”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하지만 상옥은 조용히 눈을 감고 머리에 권총을 갖다 댔다. 그의 눈에 살짝 물기가 맺혔다.
P. 207~208 약산은 이 작전에 푸른 눈의 의열단원 ‘마자르’를 이용하기로 했다. 마자르는 약산의 지시를 받고 서양 귀공자처럼 차려 입었다. 그는 아리따운 동양 여인 현계옥과 짐꾼 네댓 명을 거느리고 여행을 떠나는 백인 귀족청년으로 가장했다. 짐꾼들은 모두 의열단원이었으며, 트렁크 속에는 마자르가 지난 6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고성능 폭탄들이 들어 있었다.……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마자르가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했다. 그는 화가 잔뜩 난 듯 중국 관헌들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그는 “당치않은 일이오. 모두 내 짐이고 내 하인들이오. 그대로 통과시켜 주시오!”라고 고함쳤다. 마자르가 거세게 항의하자 중국 관헌들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마자르는 폭탄 제조 실력만큼이나 뛰어난 연기력으로 일행을 위험에서 구했다. 김원봉 등 의열단 일행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P. 221 황옥은 김시현, 유석현 등과 함께 인력거에 소형 폭탄을 나눠 싣고 압록강 철교를 건넜다. 황옥은 경기도 경찰부의 지시를 받고 출장을 갔다 오는 경찰관리 신분증을 제시했기 때문에 초병들은 순순히 통과시켜줬다. 설마 일본 경찰이 의열단의 폭탄을 국내로 운반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신의주로 폭탄을 반입하는 데 성공한 황옥은 폭탄 열 발과 권총 세 정, 선전문건 등을 자신의 숙소인 ‘한성여관’에 옮겨놓았으며, 나머지 폭탄 열 발은 대형 폭탄을 맡겨놓은 백영무의 집에 맡겼다. 이제 의열단은 폭탄을 갖고 조선반도의 문턱을 넘은 셈이다.
P. 141 바깥에서 “투항하라”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하지만 상옥은 조용히 눈을 감고 머리에 권총을 갖다 댔다. 그의 눈에 살짝 물기가 맺혔다.배고픈 어린 시절 낮에는 쳇불공장과 대장간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야학을 다니며 공부하던 동생 춘원과 함께 영덕철물상회를 운영했던 일, 3.1만세운동 후 <혁신공보>를 제작해 경성시내에 뿌렸던 일, 암살단을 조직해 사이토 총독을 죽이려고 한 일, 상하이 시설 연인 장규동의 죽음, 임시정부 인사들을 만나고 의열단에 가입해 원대한 조국 광복의 꿈을 키웠던 일 등 34년의 짧은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스쳐갔다.